Story 9. 크리스마스 이브의 의미
타브리즈에서 Amin이 챙겨준 석류를 지금껏 들고 다니다가 드디어 꺼내 들었다. 사실 석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곳 이란에서는 꼭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새콤달콤함은 유레카!! 혼자 먹기 좀 그래서 일본인에게도 하나 권했는데, 자기 석류 완전 좋아한다며 넙죽 받아먹었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좀 나누다가 나는 먼저 나왔다.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던가 하는 정보들을 미리 접했는데, 사실 모자이크 쪽은 내가 왠만해선 감동하지 않는지라.... 지도를 보면서 걷긴 했지만 중간에 구글맵스를 몇번 사용했다. Lonely Planet 마저 Kindle Ver.으로 폰에 다운받아서 갔고, 카메라 꺼내기 귀찮을때면 폰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문명의 이기에 물들어(?) 버린 나를 보니, 예전엔 대체 어떻게 여행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편해진건 사실인데 왠지 씁쓸하기도 하고.....? 어쨌든 고마운 gps 위치찾기 덕에 쉽게 왕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는 미리 티켓을 구매해야했다. 이를테면 함맘, 중앙홀, 박물관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몇군데를 방문할 건지 결정해서 미리 티켓을 구매하지 않으면 다시 매표소로 돌아와야만 하는 그런 번거로운 시스템이었다. 안내책자를 받아들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좀 볼만해 보이는 세군데 정도를 손가락으로 찍어 보여주니 티켓을 내주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궁전의 색감이 더더욱 빛을 발했다... 만 그것뿐. 사람도 별로 없고, 궁전자체도 생각보다 크지는 않고..
잠시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아이템(=입장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각 출입문 앞에는 사람 한명이 허접한 책상하나를 두고 티켓을 받고 있었다. 첫번째 들어간 방은 초상화가 가득걸려있는 방이었다. 아마도 옛 왕가 인물들의 초상화인듯 싶었는데,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한바퀴 비~잉 둘러보고 나오는데 5분 정도밖에 안걸렸던 것 같다. 두번째 방은 옛 무기들과 잡동사니들을 전시해놓은 방이었다. 세번째 방에는 별 의미없어 보이는 흑백사진 몇장이 걸려있었다. 이쯤되면 좀 이상한데.......? 나는 분명 크리스탈홀과 함맘 그리고 박물관 하나를 선택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허접(?)한데 내돈을 썼다면 좀 억울한데...? 팜플렛에 나와있던 방이 이방이 아닌듯 싶은데.....? 알고보니 A4 용지에 대충 페르시아어로 프린트해서 붙여놓은 방 이름을 내가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표 받는 사람은 아무말도 안했나?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란 내의 대부분의 입장권은... 돌려쓰기를 하고 있었다 (!!). 이를테면 1000토만, 2000토만, 3000토만짜리 티켓이 있는데 5000토만짜리를 사면 2000+3000이렇게 준다던지............ 아까워 아까워 아까워!!!!!!!!!!!! 이미 쓴 티켓을 돌려받을 수는 없고, 새 티켓을 사기도 억울해서 그냥 그렇게 허무한 궁구경을 마쳤다. ㅠㅠ
다음 목적지는 국립박물관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꼭 들러보는 곳이기도이하다. (갠적으론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냥 짱인듯;) 찾아가는 길에 길거리 수레에 아무렇게나 얹어 파는 빵 두개를 사먹었다. 배고파서 그런지 몰라도 꽤나 맛있었다. 물론 먼지 구덩이에서 구르던 빵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
입구에 신식 자동문, 그리고 시큐리티가 서있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가방은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손위에 겨우 얹어지는 작은 손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이것도 안되냐고 물으니 안된다며 뒷편에 라커를 가리켰다. 췟.. 깐깐하시기는.. 지갑과 여권 카메라 (밖에 안들었는데)를 꺼내들고 이제 됐냐고 물으니 가란다. 아까와 달리 예쁘게 프린트된 티켓을 받아들고 들어가...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3000리알? 300원? 흐음.... 들었던 정보와 다른데? Malek National Library & Museum? 도서관도 딸려있나보지? 하면서 안에 들어가보니 오마이갓! 잘못왔다;
여긴 말그대로 그냥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에 작은 박물관...이라고 하기도 뭣한 콜렉션이 딸려 있을뿐. 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보니 사람들이 욜쒸미 공부하는 모습이 보였다. 히잡쓰고 공부하기 얼마나 걸리적거릴까...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지하층에는 우표라던지 오래되거나 특별한 서적 몇권, 그림 몇점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여기도 가이드가 있는지 한 남자가 학생인듯한 세사람에게 전시물들을 소개시켜주고 있었다. 그러다 나에게 다가와서도 한가지 설명을 해주는데.....
뭐 코란 복사본쯤 될까 하고 언뜻 보고 지나치려는데, 그 가이드(?)분이 다시 한번 보라며 날 불렀다. 저 까만 부분이 모두 빽빽한 글씨라며... 아!
이 건물이 진짜 박물관 같이 생기긴 했는데...
다시 나와 이번엔 진짜 국립박물관을 찾아가기 위해 또다시 gps를 작동시켰다. 아이고.. 입구찾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박물관 가는 사람 있겠나! 국립박물관이라기엔 몇년은 사람이 안찾았다고 해도 믿을만큼 휑한 느낌이 들었다. 쨌든 박물관은 역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별 필요없어 보이는 중앙의 information에서 나를 손짓해서 부르더니 자연사 쪽은 공사중이라 입장이 안된다고 했다.
매표소로 가서 티켓을 끊었는데, 여기도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하 거참.. 점퍼입고 왔으면 주머니에도 들어갈 것 같은 그 쪼매난 가방하나 갖고 되게 깐깐하게들 구네. 하이고... 박물관 한번 코딱지만하다. 그 거대한 아치형 입구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구나.. 달랑 1층 규모에 한바퀴 도는데 십분이나 걸렸나 모르겠다. 그것도 찬찬히 둘러보는데 말이다. 오히려 과장 많이 보태서 전시물보다 많아보이는 경비들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인사해주는 시간이 더 걸리지 않았나싶다. 한바퀴 돌고나서 너무 허무해서 두바퀴 더 돌았다는;; 밖으로 나와보니 이 쏴람들이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 매표소 문이 닫혀있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겠다, 어이~ 어이~ 하고 허공에 소리쳐보니 어디선가 사람이 나타났다. 제 가방은 돌려주셔야죠;;
다
페르시아 관련 유물들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대영박물관으로 가시오;
쐐기문자. 볼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배워보리라!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소금인간. 약 1700여년전 소금광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다. 이집트의 미이라만큼 놀랍지는 않았다는.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고 있는 공원에서 나홀로 멍때리며 앉아서 일기나 쓰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을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앞서 말했다시피 가계부가 날아가서 ㅠ) 방명록에 강추되어있는 내장탕(?)을 먹으러 가고 싶었지만 호불호가 엄청 갈렸다. 죽어도 못먹겠다는 사람도 있고, 한국음식이 그리운 사람은 꼭 가보라는 사람도 있고. 딱히 나도 비위가 좋은건 아니라서 그냥 말았다는. 나갔다왔는지 쭉 숙소에 있었는지 일본인 S는 내가 외출했을때 그 자세 그대로 노트북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어디어디 갔다왔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 얘기하다가 문득 그가 "오늘밤 영화한편 볼래?" 하고 물었다. 딱히 할일도 없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마침 한국어 자막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낫잖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아... 크리스마스... 이브였어...? 최근 몇년간 크리스마스는 아랍 국가에서 보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의 의미조차 잊어버린걸까.... 스피커를 설치하고 쇼파를 끌어당겨서 나름 홈시어터 느낌을 세팅하는 도중 다른 일본인 2가 과자와 케익을 잔뜩 사와서 그거 먹으며 애니 '썸머워즈'를 보면서,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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