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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l Diary (완결)/~19' Korea

[경기도 안성] 추억여행

 과거로의 시간여행


in 안성


2015년 3월 8일 일요일
훌쩍 떠나기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눌때면, 에피소드가 줄줄 나올 정도로 세세한 것을 기억해내고는 친구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그런 내게 어릴적의 가장 그리운 추억으로 남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내가 9살때 채 반년도 살지 않았던 안성이라는 곳이다. 주공에서 주로 현장일을 하셨던 아빠를 따라 꽤나 이사를 다녔지만, 그곳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환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태어나서 쭉 서울, 그것도 아파트에 살았던 나로서는, 그런 시골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라고 부를만한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뇌리에 깊숙히 박히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외국에서 살았던 세월을 제외하고 그 이전, 그러니까 대학생이었던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잘 되어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찾아가볼 생각이 선뜻 나지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안성 가까운(?) 곳에서 몇일 지낼 일이 생겼고, 이젠 평택까지 지하철 운행까지 하니 안성으로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추억을 찾아 떠났다. 주민등록초본에 찍혀있던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
평택,
그리고 안성
  평택. 평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살던 곳은 주소상 안성이지만 평택 중심가에 훨씬 가까웠다. 그 당시, 그러니까 27년전, 나는 평택에 있던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워낙 어릴때부터 쳐온 피아노라서 그때 다닌 그 학원과 내가 평생 음악을 하게 된 것과는 일말의 관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 거리에도 불구하고 옆도시인 평택까지 학원을 다니게 한 울 엄마도 정말 대단하다.

 평택역에 내리자 AK Plaza라는 초대형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는 뭐 서울처럼 삐까뻔쩍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을 법한 도시의 느낌이 들어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성도 무사(?)하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7년이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내 추억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미리 지도로 확인해보니 내가 살던 그 동네에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하기사 지금 없는 것 없는 화려한 곳(?)이 되어버린 일산도 내가 처음 중학교때 이사를 갔을때 아무것도 없었지. (그래도 안성 같은 시골은 아니었어;;; 무려 신도시잖아 읭;)


 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요즘은 어플로 검색만 하면 버스 번호와 정류장까지 좌르르 알려주니 모르는 곳에 가는데 불편함이 없다. 헤메기도 하고 하는게 여행의 일부이고 추억이던 시절이 불과 몇년 전이었는데. 여튼 목적지는 내가 한학기 동안 다녔던 문기국민학교, 아니 문기초등학교다. 당시 이사간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게 이 학교였던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눈에 띈 것은 큰 건물의 롯데마트, 그리고 각종 공장부지와 음식점들 등등.... 예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풍경이지만, 아직 논밭이 일부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하다. 정류장에서 바로 나무들 사이로 우뚝 솟이있는 문기초등학교가 빼꼼히 보인다. 우뚝 솟아있는... 우뚝.... 내가 다니던 시절의 문기초등학교는 아마 그 근처 몇 킬로 근방에서는 유일한 초등학교였음에 틀림없다. 한 학년에 딱 한 반씩 총 여섯 학급. 그 때문에 한반에 오육십명 정도 우글우글 모여서 수업했던 기억. 그렇게 1층 건물 한채, 그게 전부였다. 그런 학교가 멀리서도 보일만큼 클리가 없지 않은가. 벌써부터 허탈해지려고 한다. 증축한 것일까 아니면 허물고 재건축이라도 한 것일까. 네이버 검색 결과는 헛웃음을 짓게 했다. 1961년 개교했다는 이 학교는 98년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으며 2002년 학교평가 우수교로 선정된, 6학년 17학급 (그래도 서울과 비교하면 큰 규모는 아니다) + 병설유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더 가까이 다가갔을때 웃음이 조금 배어나왔다. 건물은 총 세개였다. 증축한 두 건물 외에 원래의 학교가 남아있다. 다들 새건물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남걱정을 하면서 혹시 들어가볼 수 있나 문앞을 기웃거려봤다. 뿌옇게 먼지 낀 유리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복도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눈이 뙇 마주쳤다. 놀라서 얼른 다른쪽으로 피해가니, 축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과 몇몇 아이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떠들고 있다. 학교를 빌린 동호회나 동네 조기축구회인지, 아니면 학교 관계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들어가봐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왠지 쭈뼛쭈뼛 아저씨 패거리들 사이로 끼어들기가 뭣해서 학교 뒷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학교 뒷쪽엔 창고 같은 건물과 쓰레기 수거장, 그리고 수돗가가 있었다. 저 잠겨있는 건물은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선사해준 그 '푸세식' 화장실 건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수돗가의 위치로 봤을때) 강릉에 있던 우리 외갓집에도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나는 그 냄새와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그 집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가야하는 학교 화장실이.... 어느날인가 나는 내가 좋아하던, 보석이 촘촘히 박힌 벨트가 달린 바지를 입고 학교를 갔는데, 볼일을 보다가 그만 벨트를 빠뜨리고 말았다. 그때의 그 충격이란.. 깊어서 주울 수도, 주워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상황에서 멍하니 한참 벨트를 바라보았었다 (....)



 행정실쪽 뒷문을 살짝 당겨보니 열려있어서, 방문자는 방문증을 꼭 받으라는 문앞의 문구를 무시한채 안으로 슬쩍 들어가보았다. 주말에 학교에 누가 있단 말인가. 행정실문 자물쇠가 열려있는 것을 보니 (요즘 세상에도 자물쇠로 잠그는 교실이 있다니) 아까 그 사람들 중에 관계자가 있긴 한 모양이다.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들어가 복도를 바라보고 서니, 꼭 여고괴담 귀신이 삼단 콤보로 다가올 것 같은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재빨리 복도를 걸어가 예전 교실이었을 곳 안쪽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아직 사용되는 곳임이 확실하다. 오래된 신발장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복도 끝 출구문이 열려있지 않아 다시 들어왔던 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재빨리 탈출(?)했다. 혹시 CCTV 있는거 아녀;






세월이
야속하더라~

  그렇게 짠한 마음으로 학교를 나와 이제 살던 집으로 가보기로 하고 지도를 검색해본다. 2km..... 그 나이대에 비해 유독 키도 작던 (물론 지금은 그때의 주 비교대상이던 사촌언니동생들의 키를 훌쩍 넘었지만) 9살 어린아이를 왕복 4km의,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고 발만 헛딛어도 옆의 논밭으로 구를듯 했던 그 갓길을 혼자 다니게 했던 울 엄마는 어떤 생각이셨을까. 게다가 어릴때 옷을 유독 이쁘게도 입혔다던 울 엄마 외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레이스 달린 치마까지 나풀거려가며 흑먼지 나는 길을 걸어다녔을 것이다. 내가 커서 오지를 겁없이 혼자 여행다니고 한게 혹시 다 그때의 영향은 아닐런지. 요즘은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버스가 생겼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걸어가보기로 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헉헉 거리며 이제는 변해버린 7차선 도로를 따라 30분을 걸었다. 아이의 종종 걸음으로는 얼마나 걸렸을지.... 가는 길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온전히 네비에 의지하여 찾아간 집은...









잔디는 다 어디가고.... 폐허 같은 땅만 덩그러니...


내 기억속의 27년전의 집은 잔디가 쫙 깔려있는 넓~~은 마당에 뛰어놀수 있는 퐁퐁이 설치되어 있고,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넓고 예쁜 2.5층 양옥집이었다. 그런데 나무 한그루 안보이는 초라한 마당에, 공사중인 낡고 초라한 집, 그게 다였다. 옆집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께 슬쩍 다가가 보았다. 예전에 글을 쓰던 할머니가 살던 집이다. 그 집에 뽀삐라는 귀여운 삽살개가 있었는데, 남동생이 그 개를 엄청 무서워했었다. 그래서 태권도 학원 차가 도착할 때가 되면 뽀~삐~ 하면서 차 쪽으로 뛰어나가지 못하게 개를 부르곤 했다. 물론 뽀삐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차쪽으로 돌진했고, 동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일쑤였지만. 여튼 중학교땐가.. 후에 한번 찾아온 적이 있긴 했는데, 그때도 나이가 엄청 많으셨으니 지금쯤은.... (쩜쩜쩜)


나 : 할머니, 이 집에 사세요? 혹시 여기 잠깐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할머니 : 무슨 일인데 그랴? (수상한 눈빛)

나 : 제가 어렸을때 여기 살았었는데, 생각나서 찾아왔거든요~

할머니 : 옛날 언제? 여기 살던 사람 알아? (할머니집)

나 : 네 왠 할머니 한분 사셨는데....

할머니 : 여긴 쭉 늙은이들이 살았지.... 여튼 우리집은 아니지만 찍으슈. 뭐 어때.

나 : 그럼 여기 (내가 살던 집)는 아무도 안 사나요?

할머니 : 지금은 아저씨 하나 혼자 살지.

(사진 찍고 있으니 수상한 듯 할아버지 다가 오신다)

나 : 제가 예전에 여기서 살았었어요.

할아버지 : 예전에 언제?

나 : 27년 전에요.

할아버지 : 그런데 어쩐 일로 왔대?

나 : 그냥 어렸을때 생각나서 왔어요. 동네 구경도 하고, 방금 문기초등학교 구경도 하고 왔어요. 집도 보고 싶어서 찾아왔구요.

할아버지 : 지금은 어디 사는데?

나 : 지금은 서울에 살구요.

할아버지 : 하이고.. 어뜨케 생각난다고 옛날 동네를 다 찾아왔대? 허이구...

나 : 근데 너무 많이 변했더라구요. 여기도 잔디 쫙 깔려 있었는데....

할아버지 : 그람! 세월이 얼만데 그대로겠어! 다 변했지. 여기 있던 나무들도 다 뽑아내구...

               근데 나이가 몇인데 그리 오래전에 여기 있었대. 30대여?

나 : 네.

할머니 : 고등학교 갓 졸업한 것 같아 보이는데.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할머니 보다 현실적이시다;;) 대학생 같은데... 결혼은 했고?

나 : 아니요;;

할아버지 : 결혼을 해야지 왜 안했어. 나이가 먹었음 해야지!

나 : 네. 그럼요. 해야죠;; 하하........

할아버지 :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결혼을 해야지 부모님께 효도하는 거지.

나 : 하하... 안그래도 집에서 하두 결혼으로 스트레스 줘서 집 나와서 여기 온건데...

할아버지 : 부모맘에 다 똑같지 뭐.....


 부모맘이란 다 그런걸까.. 잠시 맨 결혼 걱정인 울 부모님을 떠올려보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그곳을 떴다. 왠지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냥 추억속에 남길 것을 그랬나.. 생각하다가 아마도 이 주변 상황으로 봐선 (바로 앞까지 큰 건물이 들어섰다) 다음에 찾아올땐 그 집이 남아있을 것 같지가 않아 잘 왔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근처 언덕에 보이는 '대림 팔각정'에 잠시 올라가보았다. 팔각정 옆에 있는 집에서 개들이 짖고 난리를 쳤다. 동네에 개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마당이 우리집 보다 훨씬 넓던 동네의 한 아저씨가 우리집에도 까맣고 작은 강아지 한마리를 선물했었다. 내가 실수로 다리를 부러뜨리긴 했지만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 결국 다시 이사를 가면서 엄마한테 다시 보내줬다. 은지 인지 금지인지 하던 동급생의 집에는 케이지에 갇힌 큰 개가 엄청 많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사육장이거나 영양탕 집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 같은데 후자는 아니길 바라며... 언제 생긴 정자인지, 원래도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집에서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후에 생긴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올라가는 길에 추억의 소똥 냄새가 확 났다. 요즘 비료는 냄새도 없다는데... 냄새가 나면 발효(?)가 덜 된 거라던데....








 다시 동네를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혹시 누가 날 알아보지나 않을까 헛된 기대도 해보면서. 생각나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부잣집 아들 같았던 반장 정근이, 소풍때 같이 노래불렀던 은숙이, 얼굴이 넙데데한 순딩이 근숙이, 그리고 은지 (인지 금지인지;), 은지랑 꼭 붙어다니던 남자아이, 전학온 나에게 1등을 뺏겼다며 흘겨보던 여자아이... 실제로 대학생이 되어 초등학교때 살던 광명시에 놀러갔을때, 친구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쟤 걔 아니야?" 하면서 수근거렸던 적이 있었다. 서로 부끄러웠는지 말은 못건냈지만, 나는 어릴때와 얼굴이 변화가 거의 없어서 그 후에도 누가 나를 길에서 알아본 사례가 몇 번인가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해보면서 동네 어귀까지 나왔다. 이제는 버스가 거의 집앞까지 다녀서 이름도 거창한 '아방궁'이라는 (그 앞에 생긴 대형 사우나의 이름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조금전 버스가 떠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어 대림동산 정류장까지 걸어나온 것이다. 엄마가 "대림동산에 살때~"라고 말하던게 여기였는지 이제서야 알았다. 나는 "안성살때~"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타고 평택으로 향했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에야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어쩐지 설레이기도 한 하루의 나들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기억하는 안성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