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 이 사기꾼들!
- 부제 : 에티오피아인들의 국민성 -
그놈들
아침 일찍 서둘러나갔어야했다. 그 사실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집트 대사관에 가기 위해 막 나서려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호텔 주인? 청소 아줌마? 눠눠. 어제 호텔 찾기를 도와줬던 두 청년이 문앞에 서 있었다. "너 어제 이집트 대사관 간다고 했잖아~ 우리가 같이 가주려고." 응?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니..? 일단 미니버스 정류장만 찾고 보낼 생각으로 같이 숙소를 나섰다. 하도 많은 미니버스들 (봉고)이 수시로 왔다갔다거리고 있기 때문에 암하릭을 모르는 나 혼자는 찾기 쉽지 않을 터였다. 청년들이 있어 내가 잠시 방심했던 것일까. 자켓 주머니에 이어폰을 낀채로 아이폰을 넣어두었었는데, 이어폰 줄이 갑자기 툭 떨어지며 내 다리를 스쳤다. !!!!! 재빨리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역시나 폰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만큼 아디스의 교통체증에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왠 놈이 내 폰을 든 채로 (핑크색 케이스가 눈에 띔) 찻길 반대편으로 건너가려던 놈은 오가는 차 때문에 길 중간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두 청년은 대낮게 그 놈과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다. 나도 오랜만에 전력질주를 했지만 차마 따라잡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청년 중 하나가 내 폰을 되찾아 돌아왔다. 다른 청년은 소매치기 놈을 잡아 족쳐야 한다며 끝까지 쫓아갔지만 결국 잡지는 못했다. 나는 이미 알바니아에서 새폰 하나를 소매치기 당한 적이 있었고, 또한 빠리에서도 당했었기 때문에 (물론 이땐 찾았다) 내 폰을 건드리는 이에 대한 분노는 그 어떤 분노보다 컸기 때문에, 이때 이 두 청년들에게 뭐든 다 해줘도 좋을 만큼 너무너무 고마웠다. 적어도 이때는 말이다. 미니버스를 무사히 찾고 뒤를 돌아 "도와줘서 고마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날 봉고 맨 구석자리로 밀어넣고는 말릴 새도 없이 옆자리에 끼어앉았다. "너도 가게?" 하니 끝까지 도와주겠다며 얼마 안되는 차비를 대신 내주었다. (약 150원)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너는 손님이잖아. 이런게 에티오피아의 호스피탈리티야." 한다. 아. 좋은 애들이구나. 지난 여행이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있던 이란이어서였던가. 원래 경계심 쩌는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 덕에 이집트 대사관에는 쉽게 도착했다. 까탈스럽게도 대사관에서는 볼일이 있는 나를 제외하곤 들여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들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비자를 월요일 오후에 찾으러 오라는 청천벽력을 들었다. 아디스에 그렇게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집트 비자를 받은 후에 곧바로 수단 비자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별 수 있나.. 그 길로 아디스아바바 대학으로 가서 대학 내에 있는 Ethnological Museum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 청년 중 하나는 이 대학의 학생이라고 했고, 우리를 막아서는 수위에게 "박물관 가요" 한마디 하니 그대로 통과되었다. 그들은 이 박물관을 수십번 와봤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제 걍 좀 가지...;) 이 박물관은 아디스에서는 가장 괜찮은 볼거리로 평가되고 있었고, 심지어는 National Museum 보다 낫다고 했기 때문에,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망설이지 않고 첫 목적지로 잡았던 것이다. 배아프게도 현지인의 25배나 (나는 학생증으로 15배) 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는 했으나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청년들은 어제오늘 St. George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오늘 Facebook 이라는 만남이 곳곳에 열릴 것이라며, (아마 솔로대첩 같은 걸 상상하면 되리라.) 같이 가서 파티도 하며 먹고 마시자고 했다. 나는 시끄러운 곳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들과 계속 동행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탓에 배는 고팠으며, 결정적으로 아직도 지난 며칠간의 고생 때문에 온몸이 쑤시고 피곤했으므로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
본색을
드러내는 그놈들 어쨌든 밥은 먹어야겠고, 또 휴대폰을 찾아준 것과 가이드 (비록 내가 원한건 아닐지라도)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은 해야겠기에 그들이 점심먹으로 간다는 곳에 따라나섰다. 아주 허름한 로컬식당이라 가격이 그리 비쌀 것 같지도 않았다. 에티오피아의 대표음식인 인제라를 먹었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가려진다는 음식이다. 고기나 여러가지 재료들을 발효된 빵에 싸먹는 건데, 얼마나 발효됐느냐에 따라 이 빵의 맛이 천차만별인지라, 어떤 분은 도저히 인제라를 삼킬 수가 없어 여행 내내 스파게티만 먹었노라고 - 한때 이탈리아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스파게티 천지 - 했고, 또 어떤분은 한번은 참아도 두번 먹을 맛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곳의 인제라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입맛 까탈스럽고 편식 심한 내가 먹을 수 있을 정도라면 말이다. 그들은 물을 먹고 나에게는 콜라를 시켜주며, 자기네들은 면역이 되어 괜찮지만 여행자들은 절대 마시면 안된다고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꽤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그들이 여행자로써 케냐에 갔을때 도움받은 얘기, 미래에 하고 싶은 꿈 얘기 등등. 하지만 계산할 때가 되어 그들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산서를 받으러 온 소년과 계속해서 암하릭으로 대화를 했고, 소년은 내 눈치를 슬슬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274 birr 를 내란다. 적어도 여행이 관련되면 꼼꼼하기로 소문난 (어디에;) 내가 미리 알아보기로는 인제라는 보통 20-50 사이다. 인제라의 양은 누가 보아도 3인분이 아니었으나 2인분이라고 쳐도 1인분에 100이 넘는다는 소리다. 게다가 여기는 누가봐도 동네사람들만 올 것 같은 동네 구석의 허름한 로컬식당.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 시킨 음식이 'special'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난 그들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 그리고 '밥값은 당연히 니가 내는 거 아냐?' 하는 듯한 뻔뻔함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꾹 참고 계산을 했다. 어차피 내가 내려던 밥값이었고, 여전히 휴대폰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으며, 기껏해야 두당 5천원 수준이었으므로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화는 났지만 그들의 도움을 또 받아야만 할 일이 있었다. 외국인이 심카드를 사려면 아이디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청년 중 하나가 자기 아이디를 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기 아이디를 내고, 사진을 제출하고 이러저러 하고 나서는 350비르를 내라고 했다. 내가 알고온 가격이 100 비르였으므로 나는 곧바로 심카드 따위 필요없다며 취소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조차 안된다고 했다. (........) 거기다가 마이크로심 자르는 값으로 50비르를 더 요구했다. 나 점점 혈압 올라오는데 참아야하나... 인상 팍 쓰고 미간에 내천 川 자를 그린 채로 앞서 걸어가는데 4-5살쯤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이 아디스아바바에는 거지, 노숙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오바 조금 보태자면 한발짝 걸어 한명씩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정말 우글우글하다. 처음 이들을 봤을때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한사람이 나에게 1 비르 (약 70원)을 바란다고 해도 나는 절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초가난 여행자여서도 그렇고, 돕기엔 저들의 수는 정말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무시하고 못본척 하기에는 길거리에서 먼지구덩이 속에서 젖을 빨고 있는 저 간난아기들과 꼬마애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결론적으로 나는 후자를 택했지만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태어나서 한번도 씻지 않았을 것 같은 꼬질꼬질한 손으로 가뜩이나 폭발 직전인 나를 붙잡았을때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손을 아무 냉정하게 뿌리치며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장면을 보고있던 청년들이 "그 아이는 그저 돈이 필요할 뿐이야" 라고 했고, 나는 "I also need money"라며 반박했다. 그 말에 낄낄대는 그들을 보며 '거지나 거지 근성쩌는 니들이나 다를 것 없거든' 속으로 씹어대며 계속 길을 걸어갔다. 나중에 정신이 들었(?)을땐 이 아이를 뿌리쳤던 장면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숙소가 나타날때까지 그들은 쫑알거리며 정말 파티를 가지 않겠냐고 꼬셔댔고, 나는 단호하게 가지 않겠다고 했다. 또 어떤 거짓말로 날 벗겨 먹으려고. 잘가를 외치고 뒤돌아서려는 나에게 그들은 눈빛을 주고 받으며 우물쭈물하더니, 아까 빌린 100 비르는 이따가 꼭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들이 일단 파티에 갔다가 저녁때 돌아올건데 이따 돌아올때 택시비 100비르를 빌려달라는 것이다. 평소에 착하고도 욕 싫어하기로 소문난 (음?) 내 입에서 쌍시옷과 숫자들이 저절로 막 튀어나왔다. 뭔가 머릿속에서 꼭지가 핑~ 돌더니, 그 길로 뒤도 안돌아보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내 뒤통수에다 대고 "정말 안빌려줄거야?" 한다. 저 놈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인가. 숙소로 돌아와 오늘 일을 돌이켜 떠올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안풀렸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름 여행 베테랑 축에 낀다는 나로서는 뭐 어디서 바가지를 당한다던가 하는 일은 한번도 당해본 일이 없었다. 워낙 가난 여행자이기 때문에 돈이 걸린 일에는 목숨을 걸(?)었고, 또한 무한 경계심 때문에 왠만하면 그렇게 곱게 넘어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후우..후우.. 이 날은 두고두고, 내 여행 역사상 최악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 뭐.. 내 아이폰을 찾아준 댓가치고는 아주 저렴하지. 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려고 해도 - 나중엔 그 소매치기 놈도 한 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분이 안풀려 그길로 엄마한테 카톡을 했다. "엄마 징징징 나 사기꾼들한테 당했어 누가 내 폰도 돈도 훔쳐갔어 징징징" 평소 부리지도 않던 앙탈을 부리며 엄마에게 위로 받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끝까지 반대했던 - 그리고 이미 온 이때도 당장 독일로 돌아가라고 할 때였다 - 엄마는 마치 쌤통이라며 얼마나 뜯겼냐 물었다. "한 3-4만원...?" 하니, 돌아오는 말은 "............장난하냐?" 였다. 엄마 지금 3-4만원 무시한거야..? 저 돈이면 아디스 떠나면 일주일치 숙박비는 나오는데............ 그렇게 위로는 물건너 간채로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아디스에 일한다는, 한번도 만난적은 없는 트친을 만나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신세한탄 트윗을 보고 내 고생이 안타까우셨는지 밥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동포라는 이름 아래. 핫핫. 그런데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미니버스들이 보이질 않았다. 며칠전 뉴스에서 본, 사망한 총리의 추모행렬 때문에 도로가 차단되어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가는 길이었는지 따라 오라고 했다. 그들은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미니버스가 다니는 곳이 있다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계속해서 걸어갔고, 결국 트친을 만나기로 한 근처까지 가게 되었다. 시내 중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추모행사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다며 경찰들이 길을 막으며 다른 쪽으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약속 장소 근처를 빙빙 돌고 있었다. (다른 얘기지만 멀리서 언뜻 보이는 촛불추모식은 굉장히 크고 화려하며 멋있었다) 10비르를 주고 전화기를 빌려 트친에게 전화를 하니, 광장 반대쪽에서 오고 있던 그분도 진입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못만나겠네요" 하며 포기상태까지 갔다가 어찌저찌해서 겨우 이산가족상봉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길 안내를 해주던, '외국인을 절대 혼자두지 않는다'며 친구가 올때까지 내게서 멀어지지 않던 아저씨 둘은 고맙다며 돌아서는 나에게 본색을 드러냈다. 아니, 아주 정중하게 얘기했다. 자기들의 시간을 소비했으니 수고비를 내놓으라고. 겨우 만난 트친분이 이럴땐 무시하고 걸어가는게 상책이라고 해서 막 가는데 헤이~ 헤이~ 하며 계속 쫓아왔다. 이런 경우는 없는 거라고. 트친이 걸음을 멈추고 홱 돌아 아저씨에게 조근조근 쫓아냈다. "이 친구가 처음에 미니버스 어디서 타냐고 물었지? 이 친구는 미니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니들이 여까지 걸어서 데려왔지?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근처 식당으로 가서 맘껏 먹으며 오늘 일에 대한 썰을 풀어댔다. 역시 어디가나 동포가 최고여 ㅠ 나는 "모르는 사람을 막 도와주시고 ㅠㅠ 감동 ㅠㅠ" 이 상태였고, 그분이 "제가 베풀 수 있을때 베푸는 거고, 언젠가 또 반대 상황에 놓이는 일도 있는 거죠" 할때 그분의 뒷편에서 잠시 후광이 비췄던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왜이리 되는 일이 없나 싶고, 에티오피아에 대해 치를 떨고 있었지만 넘 좋은 분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분 입장에서 되려 엄한일(?)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여튼 그분 말대로 베푼만큼 그분께 돌아갈 것이라고 믿으며 숙소로. <短想>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외국인의 돈을 쓰게 만드는데 한치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들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연봉을 여행에 쓰는 외국인들이 돈이 많다고, 자기들 몫으로 돌아오는 푼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그 여행을 위해 평소에 얼마나 찌질하게 사는지 그들이 관심이나 있겠는가) 정말 짜증나는 것은 그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다. 이집트나 여타 중동국가들처럼 '내가 저 사람의 돈을 뜯어먹어야지' 하고 의도적으로 막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나는 여행자인데,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그런 현실이 화가 나기보다는 너무 안타깝다. 그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만큼이나, 자기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죽을때까지 깨닫지 못할 것 아닌가.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지원병을 파병한 유일한 나라다. 그 당시만 해도 에티오피아의 상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잘 살았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고, 파병갔던 군인들이 낙인찍혀 씁쓸하게 살아가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나라이다. 내 보기에 그들의, 그때부터 쭉 대물림되었을 법한 이런 마인드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가난한 민족성을 가진 가난한 나라는 쭉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밉기보다 불쌍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이집트 비자 310 점심 인제라+콜라+물 274, 짜뜨 200 심카드 350+커팅 50, 전화 빌려쓰기 10 민속박물관 (학생) 30 미니버스 2.70 = 1227.70 / 누계 1741.40 Bir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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