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에서 헌혈하기
파란만장 독일 헌혈기
2012년의 어느 날
나는 한국에 있을때에도 매년 한번씩은 헌혈을 했었더랬다. 그런 내가 재작년 여름인가 한국에 가서 오랜만에 헌혈을 하려고 했더니, 독일 (= 광우병 위험지역)에 5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헌혈 불가판정을 받았다.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헌혈 센터에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을 테지만, 거짓을 모르는 내 진실의 입이 그만 술술 불고 말았던 것이다. 쨌든 전산에 기록이 남아 이제 한국에서는 '평생' 헌혈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단, 혈장헌혈은 가능)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독일에서 헌혈을 하러 Uniklinik에 가기로 결심. 나와 동행한 독일친구 M군은 태어나서 한번도 헌혈을 해본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혈액형도 모른다고 한다. (.......) 쨌든 서류를 작성하고 (신분증만 있으면 외국인도 가능) 기다렸다. 우리나라는 헌혈 좀 제발 해주십사 거리에 나와 호객을 하고 이런저런 사은품으로 꼬시기도 하고 그러는데, 독일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엄~~청 많았다. 언뜻봐도 20-30명은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차례를 기다려 피검사를 했는데, 오른손을 따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모자란다고 해서 왼손을 한번 더 땄다. (.......) 양손이 다를리가 있으랴 생각했지만 왼손은 합격 (!!)
한국에서는 피검사 후에 바로 침상으로 직행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절차가 까다로워서 의사쌤과의 개인면담이 있다. 일단 오늘 헌혈은 가능하지만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으니 내일부터 복용하라며 철분약을 '공짜로' 받아서 땡잡았다 싶어 속으로 덩실덩실~ 그리고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체중이 헌혈 기준치 (독일은 50kg, 한국은 45kg)가 넘느냐고 물었다. 크게 끄덕하니 얼마냐고 묻길래 솔직히 대답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한번 쏴주더니 체중계 위에 함 올라가 보란다. 당당히 - 사실은 겨우 - 합격. 사실 계속 기준치 전후로 왔다갔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에 삼겹살까지 구워먹고 온 터였다. 그 뒤에 혈압을 체크하려고 팔을 걷으라고 하시더니, 팔이 너무 얇다고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다시 체중계 위로 올라가 보라고 하신다. 그 의사쌤 의심 한번 쩌신다; 아까와 같다. 혹시 고장인가....? 혼자 중얼거리시며 의사쌤도 직접 체중계 위에 올라가보신다;;;;; "저 돌 같은거 안갖고 왔구요. 사실 제 살들은 안보이는데 좀 숨어있거든요;;" 하고 말씀드리니 계속 갸웃거리시더니 결국 OK 사인. 헌혈 한번 하기 힘드네.
쌤 잠시 나가신 틈을 타 몰래 찰칵!
검진도 패스하고 바로 접수하니 그 자리에서 현금을 줘서 좀 놀랐다. 알고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것도 지폐 두장 떡하니 내미니 조금 황당. 무....무...물론... 도...돈 때문에 허....헌혈한 것은 아.....아니지만서도 괜시리 뿌듯. 직원들도 너무너무 친절하고 좋고, 그렇게 무사히 헌혈! 아니, 여기까지만 해도 무사히 끝난 줄 알았다. 같이 헌혈하기로 했던 M군은 지난주에 치과에 다녀온 기록이 있어서 오늘 헌혈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며, 엄청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풉.
내 피같은 피(?) 뽑히는 중
한국은 반창고 하나 달랑 붙여주는데 독일은 붕대를 칭칭
헌혈실에서 나오니 옆에 마련된 작은 식당에 빵, 치즈, 살라미, 햄, 과일, 야채, 음료들이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유후! 말했듯 헌혈자가 너무 많아서 자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느 노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들도 헌혈에 욜쒸미 동참하는 모습이 참 한국에선 흔치 않은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때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고 고개가 저절로 끄떡끄떡하길래 음료수를 한모금 일단 마시고..............................
그리고는 막 무슨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세요!! 정신이 드시나요?" (...........) 눈을 슬그머니 뜨니 여자 간호사분이 정신이 드냐고 막 묻고, 남자 간호사분이 내 두 다리를 높이 들고 있었다. 으잉? 이게 어찌된 일이지....? 난 분명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몸을 일으켜보니 어느새 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간이침대에 옮겨져 누운채로 나는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와.... 살다보니 내가 링거라는 것을 다 맞아본다. 내 일생 가장 아파본 것이 감기 아니면 편두통인지라 병원 모르고 살았는데, 놀라고 겁나기보다는 이 모든 상황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헛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내가 이런 경험을 다 해보다니! 이러면서 말이다. 철없기는; 그렇게 한팩을 다 맞는 동안 간호사 언냐가 너무 친절하게 별일 아니다, 걱정할 거 없다 옆에서 계속 말 걸어 주셔서 소소한 감동이! 링거를 떼고 또 팔에 뭔가를 꽂아주고는 다 맞을 동안 밥먹고 오라고 했다. 정신없이 먹었던 것 같다. 먹어야 산다는 일념으로. 다시 가서 팔에 꽂은 것을 떼니 이제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그대로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갔다. M군은 오늘 일어난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평생 헌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캬캬. 별 것 아닌데. ㅇ_ㅇ;;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친구들과 카톡질을 할때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나.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더니.......................... 눈떠보니 나는 또다시 기차역 바닥에 누워있고, 사람들이 날 삥~ 둘러싸고 돕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 머리를 받치고, 또 누군가는 내 다리를 들고 있고, 지나가다가 마실 것을 꺼내들며 건네주시기도 했다. 나는 놀랍기보다는 그 상황에 또 혼자 감동받고 앉아있고;; 안정을 취하는 것 보다도, 중앙역 바닥에 누워있는게 좀 창파창파 하기도 해서 금방 일어났다. 하하하~ 전 괜찮아요~ 고마워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눈떠보니 나는 또 같은 자리에 누워있었다;; 정신없는 가운데 왠 훈남 (그 와중에) 청년이 전화로 앰뷸런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번엔 또다른 남자가 내 다리를 들고 있고, 여자분 한분은 계속 뭔가 마셔야 한다며 마실 것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물배가 차고차서 배부르다는데도 계속 멕이고, 또 사람들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옆에서 Krankenwagen이 올때까지 계속 기다려주다가 결국 차가 왔다. 나는 그 상황이 참 뻘쭘할 수가 없었다. 정신 이미 다 차렸는데 내 두발로 응급차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라니. 근데 처음 타보는 거라 좀 신기하기도 하고, 두 응급대원들은 초 훈남!! (나 왜 이러니...) 차에 타서 혈압이랑 또 이것저것 체크했다. "병원으로 갈래요?
아니면 저어~기 카페에서 수분보충하고 푹 쉬면 괜찮아 질거에요. 특히 콜라가 좋구요. 뭐 좀 먹는 것도 좋구요" 하시길래 그냥
쉬겠다고 했다. 걱정을 사서 하는 M군은 앰뷸런스로 집에 데려다 줄 수는 없냐 막 이케이케 묻고 있었지만, 난 그냥 가겠다고 했다. 훈남 대원들께 한국식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나서, 그렇게 집으로 와서 나는 콜라를 2L는 마셨던 것 같다.
한국에선 여자들은 보통 350ml 헌혈하는데, 독일은 남녀상관없이 500ml 씩 뽑는다. 체중에 비해 너무 많이 뽑은
것이 원인이 아닐까... 라고들 했다. 아니면 헌혈전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1L 이상 마시고 왔다고 살짝 뻥을 쳤더랬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서의 첫 헌혈을 끝냈고, 앞으로는 절대 헌혈하지 말라는 소리 오늘 백번도 더 들은 것 같다;; 그렇게 내게 남겨진건 양팔에 감긴 붕대와 세손가락의 반창고 (구급차에서 한번 더 땀 ㅠㅠ), 그리고 영광(?)의 25 유로. ㅎㅏ.....하....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고, 혼자 감동도 많이 받고 - 너무너무 친절한 독일 사람들 & 카톡하다 갑자기 사라졌다고 친구들이 걱정되서 국제전화를 몇번이나 했던, 그리고 다음날까지 수시로 전화해서 생사확인(?) 하던 M군. 다행히 이 친구가 내가 기절할때마다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예를 들어 바닥에 머리로 떨어진다던가;; 이날 M군이 말짱한 나보다 더 충격받았다, 불과 얼마전에 M군의 어머님이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돌아가셨는데, 아마 그때의 충격이 오버랩 된 것 같아서 너무너무 미안했다는. 파란만장 독일 헌혈기 끄읕!!!!
* p.s 그 후로 3개월에 한번씩 헌혈하라고 편지가 오고 있다. 그런 일이 있긴 했어도 헌혈을 끊을(?) 생각은 없지만, 3개월에 한번은 좀 심하고 1년에 한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요즘은 체중미달................... ㅠㅠ 하루 5끼씩 먹는데 이유없이 말라가는 이 몸뚱아리 ㅠㅠ...